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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선교의 旅情

최요셉 2003-08-18 (월) 15:51 22년전 6842  
  단기선교.zip 263.7K 246 22년전
필리핀 선교의 旅情
N M C 03
최 요 셉

10년 전쯤 TV에서 방영했던‘나디아’라는 명작만화를 대부분은 기억할 것이다. 대부분 바다를 배경으로 그려지는 그 만화를 떠올려 보면 구름티 하나 없는 파란 하늘과 거기에 맞닿은 한없이 푸른 바다 그리고 어느 작은 무인도에 코코넛 가득 달린 야자수와 싱싱한 바나나가 주렁주렁 달려있는 장면이 생각날 것이다. ‘해외단기선교’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 내 머릿속에 그려졌던 모습이었다. 바다 건너에 가게 되는 일이 현실로 다가올 때, 아마 외국물을 먹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주체할 수 없이 부풀어 오르는 벅찬 가슴을 지니고 있다가 출국 하루 전에는 두 눈 말똥말똥 한 채로 잠이 오지 않아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했을 것이다. 현실로 다가온 필리핀 선교일정은 7월 15일부터 7월 26일까지였다. 사실 나는 기도제목 10가지 적어놓고 기도하면서도 별루 느낌이 와 닿지 않았다. 선교라는 생각 이전에 해외에 대한 동경만이 나를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기쁨의 이면에 은근한 걱정이 있었다. 우리팀은 간사님의 학업과 관련한 개인적인 사정과 팀원들 대부분이 간호 실습을 나가야 했기 때문에 합숙(?) 전까지 서로에 대해 알 수 있는 기회가 부족하였다. 만남도 두 번 뿐이었고 전체가 모인적은 한 번도 없었기에 서먹함과 대화부족에서 오는 편견도 있었고 또 남자가 혼자뿐이라는 것도 부담이었다.

합숙을 하면서부터 그런 염려들이 하나씩 사라지기 시작했고 게다가 남자의 절대 부족으로 걱정한 부분도 완만히 해결되었는데 외모만 여자인 두 살 연하 같은 누나^^가 한 분, 선생님들 중 남자분이 한 분, 고교생 2명 중 1명이 남자여서 남자 총 5명(?)으로 고독함의 문제는 없었다.

필리핀이라는 나라를 간단히 소개하면 우리나라에서의 거리는 대략 2500KM 정도이고, 시차는 우리나라보다 약 1시간정도 느리고, 남북한 전체보다 약 1.3배정도 큰 나라이며, 태풍의 근본지로 현재 기후는 우기로 하루에도 몇 번씩 비가 오고, 교육제도는 초등 6년 ? 고등 4년 ? 대학 4년 또는 2년제로 되어있으며, 군대는 10만 7천명(육군 6만 9천, 해군 2만 3천<해병 7천명>, 공군 1만 5천)이며 대학에 ROTC군사제도가 있으며 1년학교에서 하고 대학을 졸업하면 예비역으로 편성이된다. 언어는 영어와 따갈로그어, 전기는 220V나 코드는 우리나라 110V의 코드를 쓰며, GNP는 약 1050$정도 되며, 카톨릭이 인구에 약 4/5정도 되는 나라이다.

15일 19시 40분 인천공항에서 마닐라로 출발을 했다. 비행기는 군대에서 낙하산 탈 때 몇 번 타보았을 뿐, 구름 위를 계속 달리는 높은 고도에서 장시간 타기는 처음이였다. 우리는 우리나라 항공기을 타지 않고 필리핀 항공기을 탔는데 스튜어디스가 한국인이어서 꼭 우리나라 항공기를 탄 느낌이였다. 우리나라 시계로 23시55분에 마닐라에 도착을 했다. 공항을 나서자마자 필리핀 특유의 냄새와 끈적거리는 느낌이 우리를 맞이했다. 불쾌감이 없지는 않았지만 ‘아 이것이 바로 외국이로구나’하는 느낌은 들었다. 공항에서 나오자 우리를 반기는 사람이 있었는데 노명근 선교사님이라고 간사님의 동기 되는 분이었다. 선교사님의 안내로 콘작(地名)에 거주하는 현지인 Dr. Lim의 집에 가게 되었고 부인인 Susan의 친절한 안내를 받고 해외에서의 하루를 그렇게 보냈다.

16일 아침에 발러 오로라(地名)에서 사역하시는 Roland 목사님이 워커(우리나라의 집사님 정도되는 직분)들과 함께 짚니(車名)를 타고 정장 9시간에 걸쳐 마닐라에 있는 Dr. Lim의 집까지 직접 오셨고 의사 (? 간호사 선생님들과 함께 점심을 먹고 발러로 출발하게 되었다. 그리 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길도 험하고 지루하게 느껴질 정도로 오랜 시간이 소요되었다. 도중에 목사님 댁에 들러 식사를 했는데 목사님의 식구들이 우리를 형제처럼 대해주셨다. 식사 후 10시 쯤 되어서 다시 우리의 목적지인 Baler Aurora로 출발했다. 길이 매우 험난하다는 것을 직감했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그나마 목사님이 운전하시기 때문에 긴장이 덜했다. 도중에 엔진이 과열되어 쉬기도 했고 매연이 너무 심해 도중에 마스크를 착용하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새벽 2시가 넘어서야 목적지에 도착하였다. 집은 부실했지만 다행스럽게도 전기가 들어오고 물이 나와서 생활하면서 크게 불편했던 것은 없었다. 전에 단기선교를 다녀갔던 분들은 하루 세끼 제대로 먹지 못해 피골이 상접했다든지 잘 씻지도 못해 서로 얼굴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였다고^^ 들었는데 편안한 食住의 환경을 감사했다.

이곳은 방문한 손님들이 먼저 식사를 하고 난 후 식구들이 식사를 하는 것이 예의인데 처음에는 식사 후 맛있는 음식이 또 나오길래 사양하면 예의가 아닐 것 같아 모두 먹었다. 나중에 그들의 예절을 알고 너무도 미안했다. 사역을 마치고 돌아오면 집에 있는 사람들은 식사를 하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우리는 당연히 식사를 했으리라 생각하고서 먹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나중엔 우리가 먼저 먹는 것이 미안했지만 전통을 우리 마음대로 깰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순응했다.

당시는 우기라서 비는 하루에도 몇 번씩 왔지만 저장탱크가 있는 것은 아니어서 비가 많이 왔다고 물이 많은 것은 아니었다. 하루는 목욕을 하다가 물이 부족해서 간사님과 같이
웃통을 벗고 그냥 집밖에서 비 맞으며 비누칠을 하고 씻었는데 어릴 때 놀던 생각이 났었다.
한 번은 시립고등학교를 방문해서 워십을 했다. 고등학생인 지현이와 민구가 바이올린과 플릇으로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를 연주해 학생들을 감동시켰고 그들이 나와서 눈물로 주님께 노래 부르는 모습에 마음이 뭉클하였다. 닥터 라니는 전체 학생들의 집회 중에 주님을 영접하지 않은 학생들에도 함께 주님을 영접하자는 기도를 권하였는데 주님을 영접하려고 애쓰는 학생들의 모습 속에서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영혼을 보게 되었고 이로 인해 주님과의 처음 사랑을 다시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필리핀을 사랑해 주시고 수년 후에 꼭 민족복음화를 이루어주시어 주님을 나에 주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며 주님을 전하는 자들로 충만하게 해 주시어 우리나라의 74년 explo 때 모였던 자들의 헌신으로 인해 지금의 기독교와 C.C.C가 성장한 것처럼 주님께서 꼭 함께하실 것이라고 믿는다.
또 한 번은 우리나라로 하면 전문대학에 해당되는 곳에 갔다. 이곳에서 사역을 하려고 했지만 협조가 되지 않아 하지 못하고 그곳에 있는 C.C.C사람들을 위해 그리고 학교에 있는 많은 영혼들을 위해 기도만 하고 그 학교를 떠나게 되어서 아쉬움이 남았었다.

18일은 방문한 마을(Brgy. Reserva. Baler. Aurora)에서 의료사역을 하게 되었는데 닥터 라니와 의사선생님 두 분 그리고 간호사 선생님 한 분이 진료를 하시고 우리는 진료를 위해 대기하는 사람들에게 사영리를 전하게 되었다. 아직 간호사가 된 것은 아니지만 나에게 봉사할 수 있는 달란트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의료봉사를 통하여 복음을 전할 수 있다는 게 정말 큰 복이라고 느꼈다. 보통은 전도를 위해 누군가에게 다가가면 거부당하기 쉽지만 아가페인의 경우엔 사람들이 쉽사리 거부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들의 육체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니 다가가기도 쉽고 어디를 가든지 환영을 받기 때문에 전도하기에 유리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날 아쉽게도 예수영화상영을 하려고 마을 회관에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모였는데 영사기의 오류로 상영을 중단했는데 게다가 비까지 와서 사람들이 흩어지는 바람에 안타까웠다.

다음날 아침 병원에서 당뇨혈당체크를 하면서 대기자들에게 사영리를 전했다.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것은 두렵지 않았지만 내가 영어를 잘하지 못해 불편했다. 영어실력을 향상하도록 노력해야겠다. 오후에는 카톨릭대학교와 성당에 갔다. 학교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의 모습에서 교육의 열의를 느꼈다. 기도모임을 하고는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하고 인성만 믿는 곳, 즉 변질된 곳을 견학하면서 그들과 학교를 위해 묵상기도를 했다.

20일에 교회 2주념 기념예배를 드렸다. 신기하게도 우리가 꼭 교회의 행사에 맞춰 온 것이었다. 이곳에서 워쉽과 부채춤 그리고 태권도로 한국을 소개했고, 교회의 기념예배가 끝난 후 교회 청년들과 같이 밥을 먹으면서 어색한 모습들이 친근한 모습들로 변해갔다. 같은 마음을 품고 있는 형제들이어서 빨리 친숙해졌던 것 같다.

21일에 아침에 해변에 갔는데 내가 그려보았던 해외의 이미지와 매우 비슷했다. 그렇게
푸른 바다는 처음 보았고 게다가 아름다운 산까지 보너스로 있었다. 그리고 아시아에서 제일 큰나무도 보게 되었다. 멋진 이국의 경치를 보면서 하나님의 창조하신 아름다운 자연을 느끼는 기회가 되었다.

22일 교도소사역이 계획되어 있었는데 태풍으로 인해 취소가 되었다. 우리가 만난 태풍은 이전 태풍보다 큰 것이었다고 들었는데 바로 앞에서 나무가 부러져 줄기가 갈라지는 재해까지 발생했지만 무섭다고 생각진 않았다. 다만 그 때문에 정전이 되어 우리가 떠나는 24일까지 계속되었고 23일에 마닐라로 떠나기로 했던 계획이 연기되었다. 그렇지만 덕분에 우리를 도와준 워커들과 친해질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한 자매가 장염으로 고생을 해서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했지만 Baler에서 이동하기 전에 회복되어서 다행스러웠다. 24일 새벽 2시에 일어나 마닐라로 가기위해 2시 30분에 터미널로 이동해서 버스를 탔다. 버스의 상태는 최악이었는데 우리나라의 시골 완행버스보다 낡은 시설에다가 의자도 직각이고 앞 뒤 공간도 너무 좁았다. 버스는 4시 정도에 출발을 했는데 가는 도중 펑크가 나서 수리를 하다가 한 시간 뒤에 오는 버스가 추월해가는 사태가 일어나기도 했다. 게다가 도로까지 엉망이어서 처음 왔던 길이 막혀 다른 길로 갔다. 가는 도중에도 길에 커다란 구덩이가 많고 위태로운 험지가 많은데도 불구하고 기사님의 초스피드 난폭운전으로 마음이 조마조마 했다. 그래서 가는 중에 안전하게 마닐라까지 인도해 달라고 기도를 했다.
달리는 차안에서 일출을 보았는데 너무도 아름다워서 경황이 없는 와중에도 사진을 찍어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어 창문을 열고 사진을 찍었다. 마닐라 중간지점인 Cabanatuan에 10시가 조금 못되어 도착을 했고 다시 마닐라로 가는 버스로 갈아타 버스에서 아침을 먹고 이후 오후 2시에 Manila에 도착했다. 노명근 선교사님께서 터미널에서 기다리고 계셨다. 오랜만에 한국 사람을 만나 정말 반가웠다. Manila에서 Caliraya까지 노명근 선교사님의 자동차와 첫날 필리핀에 와서 묵었던 Susan의 Brother의 차를 타고 3시간 정도를 달려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하였다. 그곳에서 MNC(medical network consultation)가 24일부터 27일까지 열렸는데 우리는 26일에 한국으로 가기 때문에 26일 아침까지만 참석했다가 나오게 되어서 아쉬웠다. 그곳에서 미국, 중국, 싱가폴, 한국, 필리핀의 의료사역에 대해 서로 나누고 기도했는데 같은 아가페 안에서 모여 그런지 대화를 하지 않아도 같은 마음을 품을 수가 있었다. 또한 중국에서 사역하시는 부부간호사를 만났는데 (Francis Lara라는 남자간호사) 반가웠고 함께 사역을 위해서 기도하고 노력하자고 했다.

이번 필리핀 선교를 통해 의료행위를 동반한 선교활동은 어느 나라를 가든지 환영받을 것이고 치료의 도구는 복음을 전하는데 더없이 좋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우리의 사역을 위해 수고하신 모든 분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떠 올려 보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겠다. 선교를 통해 만났던 모든 사람들의 천태만상이 떠오른다. 웃는 얼굴, 감격으로 흘렸던 눈물, 반가워하는 모습, 작별의 손 모든 것이 생생하다. 또한 귀국 직전에 만났던 분들이 아쉬워했던 의료사역을 필요로 하는 곳은 많은데 섬길 사람들이 없음에 대한 부분에서 의료사역으로 헌신하려는 사람들을 필요로 하신 것이 마음에 걸린다. 할일을 많은데 사람들이 부족한 것이다. 우리의 달란트가 귀하고 알차고 또한 쓰일 곳이 많다. 이러한 것들을 감당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우리는 정말 행복하도다!


박수혜 2003-08-20 (수) 17:08 22년전
형제님의 글을 읽으면서 필리핀에서의 생활들이 떠올라 너무 감사했습니다. 노명근 간사님 부부도 많이 뵙고 싶구요..아픔이 많은 땅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셔서 반드시 치유하실 것을 믿음으로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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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혜 2003-08-20 (수) 17:08 22년전
형제님의 글을 읽으면서 필리핀에서의 생활들이 떠올라 너무 감사했습니다. 노명근 간사님 부부도 많이 뵙고 싶구요..아픔이 많은 땅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셔서 반드시 치유하실 것을 믿음으로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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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미리 2003-08-20 (수) 17:31 22년전
끝까지 잘 읽었구요, 형제님의 헌신에 앞으로도 주님께서 귀하고 크게 쓰실것이라 믿습니다. 내년 구정전후로 신두시간사의 기도에 힘을 입어 나도 파키스탄을 가야할텐데... 이렇게 귀한 글들을 쓸 수 있을 지? 아주 귀한 글입니다. 감사드려요, 내내 평안하세요,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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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미리 2003-08-20 (수) 17:31 22년전
끝까지 잘 읽었구요, 형제님의 헌신에 앞으로도 주님께서 귀하고 크게 쓰실것이라 믿습니다. 내년 구정전후로 신두시간사의 기도에 힘을 입어 나도 파키스탄을 가야할텐데... 이렇게 귀한 글들을 쓸 수 있을 지? 아주 귀한 글입니다. 감사드려요, 내내 평안하세요,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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